프랑켄슈타인

2018. 5. 31. 16:26

 어렸을 때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면서 단순히 영화나 만화에서만 보는 괴물이 과학자에게 창조당해서 시련을 겪다가 죽는 흥미위주의 단순한 비극적 내용이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윤리적 입장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보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내용과 모르는 이야기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 이름인줄만 알았었는데 사실은 괴물은 이름이 없고 괴물의 창조자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사실은 이 작품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오만함을 씻어주었고 더욱 이 작품에 빠져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책 속의 괴물이 아닌 사람처럼 사고도 할줄 알고 말과 행동도 할줄 아는 사회적 존재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화 괴물이나 고질라에서 나오는 괴물들은 사고와 생각이 없는 그저 자신들의 이익에 대해 본능적 행동만 하는 존재였지만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이 괴물은 사람들과 같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흉측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에게 까지 미움을 받고 사람들을 피해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만화 두치와 뿌꾸의 몬스라는 캐릭터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외향적으로도 닮았고 태어난 환경도 같아서 책을 보기전만 해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라 생각했었는데 사랑도 받지 못하고 살아 다닌 것이 너무 불쌍했고 가슴 아팠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프랑켄슈타인은 제네바에 있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성장하였습니다. 생명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프랑켄슈타인은 점점 생명 탄생에 집착하게 되고 스승과 대립하면서 그의 연구에 종지부를 찍고 나아가서는 인간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의 연구는 성공하여 무덤에서 여러 시신을 끌어 모아 세상에는 있어서도 안 되는 괴물 생명체를 창조해냈습니다.


 그 괴물은 시체들에서 제일 좋은 부분만을 골라서 만들었는지 뛰어난 두뇌와 누구보다 강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괴물의 심성은 착하고 누구보다 순수했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외모에 따른 실망감과 혐오감이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부정적 두려움을 일으켜서 충격으로 쓰러지게 됩니다. 오랜 실험에 지치고 혼란에 빠진 프랑켄슈타인은 사랑하는 연인 엘리자베스가 있는 고향 집으로 돌아오고 다시 평온한 일상을 시작하지만 그의 동생 윌리엄이 숲에서 살해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프랑켄슈타인의 실험실에서 뛰쳐나온 괴물은 인간들이 보기에 인간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추악했으므로 인간은 그를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괴물은 한 농부의 마구간에서 기거하면서 언어를 배우고 인간을 이해하기 시작하지만 사람들에게 적응하지 못한 괴물은 혐오감을 주는 자신의 외모와 세상 사람들의 냉대에 외로움과 분노를 느끼게 되고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증오심에 불타 그의 고향집으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그의 동생 윌리엄을 사고로 살해하게 되고 더 큰 자기혐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고향집으로 찾아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난 괴물은 그를 원망하며 일생을 함께 하며 사랑할 수 있는 여자를 창조해 달라고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프랑켄슈타인이 그 요구를 거절하자 프랑켄슈타인이 사랑하는 친구와 엘리자베스를 차례로 살해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잘못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것에 책임을 느껴 괴물을 처단하려고 북극까지 쫓아가지만 죽음에 이를 정도로 쇠약해 지고 가까스로 북극 탐사선에 의해 구조된 프랑켄슈타인은 결국 세상을 뜨게 되고, 북극 탐사선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 온 괴물은 싸늘하게 죽어있는 그를 안고 북극의 빙원 속으로 사라지게 되고 이야기가 끝이 났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프랑켄슈타인의 행동으로 두 가지의 윤리적 입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첫째로는 생명윤리사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과학자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 연구를 할 때 인간복제에 대한 우려로 시민단체나 종교 단체들이 반발을 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복제물에 대한 준비와 대책도 없이 받아 들여 진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프랑켄슈타인이 실험이 한번에 성공해서 별탈이 없었지만 만약 계속 실패했다면 프랑켄슈타인이 쓴 시체는 셀 수도 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을 보고 사람들이 경악을 금하지 못했을 때처럼 생명윤리적 입장으로 복제물은 인간의 다양성과 개성을 상실케 하고 사회 관념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입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해보지 않고 미래에 대한 확신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사회에 큰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과학자들의 책임성 문제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태어나 안타까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흉칙한 얼굴을 가져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으면서 과학자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악한 마음까지 품게 되었습니다. 이런 불행한 삶을 사는 '그'에 대해 프랑켄슈타인은 아무런 책임감 없게 행동을 했습니다. 과학의 신비와 창조의 영역에 호기심 밖에 없던 프랑켄슈타인이 책임질 각오도 되어있지 않은 채 괴물을 탄생시킨 것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물론 과학자가 과학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고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자신의 실험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않고 예견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책임감 있는 과학도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전문직업인으로써 자신의 일에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읽으면서 프랑켄슈타인이 쓰여질 당시의 시대에서는 그저 상상속에 이야기로 인간복제가 불가능 했을지 몰라도 현재의 우리에게는 생명공학이나, 유전자공학이 발달하여 인간복제가 이루어 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의 과학의 발전 속도로 본다면 아마도 세월이 조금만 흐르면 놀라운 과학과 의학의 발전을 이루어서 인간복제를 통해 생명을 연장시키고 창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밝고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서 과학자들과 공학도들은 전문직업인으로서 직업적 의무와 권리와 윤리를 지키고 공공의 선에 기여해야 할 것입니다. 공학윤리를 배움으로써 공학도의 윤리를 다시 한번 생각 하고 공학윤리의 필요성을 알게 해주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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