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프랑켄슈타인

2018. 5. 31. 16:26

 어렸을 때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면서 단순히 영화나 만화에서만 보는 괴물이 과학자에게 창조당해서 시련을 겪다가 죽는 흥미위주의 단순한 비극적 내용이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윤리적 입장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보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내용과 모르는 이야기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 이름인줄만 알았었는데 사실은 괴물은 이름이 없고 괴물의 창조자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사실은 이 작품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오만함을 씻어주었고 더욱 이 작품에 빠져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책 속의 괴물이 아닌 사람처럼 사고도 할줄 알고 말과 행동도 할줄 아는 사회적 존재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화 괴물이나 고질라에서 나오는 괴물들은 사고와 생각이 없는 그저 자신들의 이익에 대해 본능적 행동만 하는 존재였지만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이 괴물은 사람들과 같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흉측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에게 까지 미움을 받고 사람들을 피해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만화 두치와 뿌꾸의 몬스라는 캐릭터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외향적으로도 닮았고 태어난 환경도 같아서 책을 보기전만 해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라 생각했었는데 사랑도 받지 못하고 살아 다닌 것이 너무 불쌍했고 가슴 아팠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프랑켄슈타인은 제네바에 있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성장하였습니다. 생명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프랑켄슈타인은 점점 생명 탄생에 집착하게 되고 스승과 대립하면서 그의 연구에 종지부를 찍고 나아가서는 인간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의 연구는 성공하여 무덤에서 여러 시신을 끌어 모아 세상에는 있어서도 안 되는 괴물 생명체를 창조해냈습니다.


 그 괴물은 시체들에서 제일 좋은 부분만을 골라서 만들었는지 뛰어난 두뇌와 누구보다 강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괴물의 심성은 착하고 누구보다 순수했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외모에 따른 실망감과 혐오감이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부정적 두려움을 일으켜서 충격으로 쓰러지게 됩니다. 오랜 실험에 지치고 혼란에 빠진 프랑켄슈타인은 사랑하는 연인 엘리자베스가 있는 고향 집으로 돌아오고 다시 평온한 일상을 시작하지만 그의 동생 윌리엄이 숲에서 살해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프랑켄슈타인의 실험실에서 뛰쳐나온 괴물은 인간들이 보기에 인간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추악했으므로 인간은 그를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괴물은 한 농부의 마구간에서 기거하면서 언어를 배우고 인간을 이해하기 시작하지만 사람들에게 적응하지 못한 괴물은 혐오감을 주는 자신의 외모와 세상 사람들의 냉대에 외로움과 분노를 느끼게 되고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증오심에 불타 그의 고향집으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그의 동생 윌리엄을 사고로 살해하게 되고 더 큰 자기혐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고향집으로 찾아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난 괴물은 그를 원망하며 일생을 함께 하며 사랑할 수 있는 여자를 창조해 달라고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프랑켄슈타인이 그 요구를 거절하자 프랑켄슈타인이 사랑하는 친구와 엘리자베스를 차례로 살해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잘못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것에 책임을 느껴 괴물을 처단하려고 북극까지 쫓아가지만 죽음에 이를 정도로 쇠약해 지고 가까스로 북극 탐사선에 의해 구조된 프랑켄슈타인은 결국 세상을 뜨게 되고, 북극 탐사선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 온 괴물은 싸늘하게 죽어있는 그를 안고 북극의 빙원 속으로 사라지게 되고 이야기가 끝이 났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프랑켄슈타인의 행동으로 두 가지의 윤리적 입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첫째로는 생명윤리사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과학자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 연구를 할 때 인간복제에 대한 우려로 시민단체나 종교 단체들이 반발을 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복제물에 대한 준비와 대책도 없이 받아 들여 진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프랑켄슈타인이 실험이 한번에 성공해서 별탈이 없었지만 만약 계속 실패했다면 프랑켄슈타인이 쓴 시체는 셀 수도 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을 보고 사람들이 경악을 금하지 못했을 때처럼 생명윤리적 입장으로 복제물은 인간의 다양성과 개성을 상실케 하고 사회 관념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입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해보지 않고 미래에 대한 확신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사회에 큰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과학자들의 책임성 문제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태어나 안타까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흉칙한 얼굴을 가져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으면서 과학자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악한 마음까지 품게 되었습니다. 이런 불행한 삶을 사는 '그'에 대해 프랑켄슈타인은 아무런 책임감 없게 행동을 했습니다. 과학의 신비와 창조의 영역에 호기심 밖에 없던 프랑켄슈타인이 책임질 각오도 되어있지 않은 채 괴물을 탄생시킨 것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물론 과학자가 과학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고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자신의 실험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않고 예견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책임감 있는 과학도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전문직업인으로써 자신의 일에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읽으면서 프랑켄슈타인이 쓰여질 당시의 시대에서는 그저 상상속에 이야기로 인간복제가 불가능 했을지 몰라도 현재의 우리에게는 생명공학이나, 유전자공학이 발달하여 인간복제가 이루어 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의 과학의 발전 속도로 본다면 아마도 세월이 조금만 흐르면 놀라운 과학과 의학의 발전을 이루어서 인간복제를 통해 생명을 연장시키고 창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밝고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서 과학자들과 공학도들은 전문직업인으로서 직업적 의무와 권리와 윤리를 지키고 공공의 선에 기여해야 할 것입니다. 공학윤리를 배움으로써 공학도의 윤리를 다시 한번 생각 하고 공학윤리의 필요성을 알게 해주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태일 평전  (0) 2018.05.30
죽음 앞에서 만나는 새로운 삶  (0) 2018.05.29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  (0) 2018.05.23
불씨잡변  (0) 2018.05.21
삼국유사  (0) 2018.05.21

전태일 평전

2018. 5. 30. 20:41

들어가며

지금부터 나를 감동시킨 한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그는 바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로 더 유명해진 22살의 청년 전태일이다. 그는 가난했으며 가난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노동으로 평생을 보냈다. 그는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대우조차 받지 못하며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과 이를 묵인하는 나라에 저항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며 이 세상을 마감했다. 어린 소녀들이 어두컴컴하고 좁은 공장에서 하루에 평균 15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을 하고, 각성제를 먹으면서 잠을 쫓으며 심지어는 폐병을 앓으면서까지 노동을 해야 했던, 인간의 최소한의 생활 조차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던 그 시절에, 전태일은 불합리한 사회의 현실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한 목숨을 불태우면서 까지 이 사회에 저항한 것이다.

그는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돈이 많은 부유층의 자식도 아니었다. 단지, 평화 시장내의 일개 재단사였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조차 돌보기 힘든 상황을 뛰어 넘어 더 많은 노동자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그를 보면서 실로 그는 선구자이며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존경받을만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전태일은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가 결코 아깝지 않은 그런 인물이다.

 

전태일 평전을 읽고

오래전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전태일 이라는 인물은 전혀 생소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태일 평전이라는 이 책은 나에게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전태일은 1948 8 26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피복제조업체에서 봉제노동자였고 그는 어머니와 태삼이라는 남동생 그리고 순옥이라는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연약한 사람이었으나 판자촌 철거나 행상들이 거리에서 몰려날 때 앞장서서 경찰에 대응할 정도로 강인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전태일이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의 유년 시절은 가난으로 끼니조차 떼우기 힘든 생활들의 연속이었다. 그의 어린시절 삶은 가출, 노동, 방황이었으나 그래도 그가 가장 즐거웠던 시절은 청옥고등공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는 두뇌가 명석했고 학구열도 매우 강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재봉일을 도우면서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하였다. 실제로 그는 그의 수기에서 정말 하루하루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고 할만큼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학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께서 학교를 그만두고 재봉일에만 신경쓰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일은 동생 태삼을 데리고 서울로 온다. 하지만 그는 그에게 닥칠 엄청난 시련을 예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으로 맞닥뜨린 현실은 냉혹했지만 그래도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가장 좋은 교사였을 것이다. 그 형용할 수 없는 현실의 깊은 채찍질로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면서도, 자기의 심장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의 벌거벗은 모습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사람이야말로, 현실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후 그의 가족은 모두 상경하고 청년 전태일은 1964년 봄, 그의 나이 16살 되는 해 시다로서 평화시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시다는 재단사, 미싱사가 일을 잘할 수 있게 보조해주며, 하루종일 실밥을 뜯거나 나르는 일, 사적인 심부름을 하는 무척 고된 노동을 요구하는 것으로 그 당시 12~15살의 소녀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일하면서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깨달았다. 노동자들의 건강상태는 손도 댈 수조차 없이 엉망이었으며 그들은 환기조차 안되는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저임금으로 매일을 시달리며 정규 근로시간 이외에 야간작업에도 매달려야 했다. 그는 업주들이 너무나 야속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직접 재단사가 되어 노동자들을 많이 도와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가 투쟁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보이게 된 계기는 한 여공이 각혈을 했을 때였다. 여공의 각혈 이후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처음으로 그는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러나 그는 직장에서 쫓겨난다. 시다들을 너무 배려한 탓에 업주의 눈에 낫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설치는 놈을 ‘바보’ 라고 부르는 것에 착안하여 재단사 친구들을 모아 ‘바보회’를 조직하고 ‘근로기준법’ 조문 등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다. 바보회는 모범업체의 설립을 통해 정당한 노동시간과 임금정책, 개선된 작업환경으로도 우수한 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업주들은 물론, 국가에 알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근로기준법은 사실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니었으며 근로감독관이 기업주와 결탁하여 서로의 편의를 봐줄 만큼 관계는 썩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전태일은 더 이상의 현실에 대한 기대는 모두 버리고 스스로 일어나서 반대편에 대해 저항하며 요구조건이 관철될 때까지 끊임없이 위협적인 도전을 감행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투쟁을 시작한다.

전태일은 그의 투쟁의지와 수많은 노동자의 뜻을 알리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 ‘나하나 죽어지면 뭔가 달라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1970 11 13일 평화시장에서의 투쟁 중 김개남에게 저들에게 정신을 번쩍들게 하자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이며 아름다운 청년의 숭고한 죽음아래 쓸모 없는 조문들만 가득찬 근로기준법 역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22살의 청년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억울한 노동착취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마지막 방법으로 목숨까지 받치는 모습에 감동 받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부분과 유서를 읽는 부분, 그리고 전태일이 병원에서 나눈 어머니와의 대화 부분에서는 특히나 가슴이 아려왔다. 평범한 재단사로서 조금만 고생하면 곧 독립하여 자신의 가게도 열 수 있는 상황을 떠나 어린 여공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도와주는 그의 모습에 나는 전태일의 따뜻하고, 착한 그의 심성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자신 역시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버스비를 털어 여공들에서 밥과 간식거리를 사주는 모습에서는 정말 자상하고 인간적인 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어느 한가지 일에 몰두하고 매진하며 앞장서서 일을 처리하는 전태일의 선구자적 모습에 감동하였다. 그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결국 그가 최후의 방법으로 죽음을 택한 것은 너무나 아쉽지만 그의 정신은 아직도 노동자들의 가슴에 불타 오르고 있을 것이다.

전태일의 배움에 대한 열의는 정말이지 대단했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그는 자기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을 시기가 청옥고등공민학교 시절이라고 말할 정도로 배움을 즐겁게 생각하였다. 근로 기준법에 대해,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모를 때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하였으며 때를 가리지 않고 동네 대학생한테 궁금한 것을 물어 보던 모습에서 배움에 대한 그의 대단한 열의를 느낄 수 있었다. 전태일의 이런 모습에 대학생활 동안 공부에 소홀히 하고 틈만 나면 빈둥거리며 놀고 싶어하던 나의 모습이 비교가 되면서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책 중간 중간에 삽입된 전태일의 일기형식의 수기는 참으로 흥미롭다.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낙서에서조차 전태일의 생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으며 핵심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풀어 쓴 글들을 보면서 이게 과연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 쓴 글일까라는 생각에 놀라움마저 들었다. 글은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반영하는데 전태일처럼 어려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알찬 자신을 키울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것은 비록 그가 생활은 어려웠지만 마음만은 부유하게 가졌고, 그 어떤 일에 대해서도 자심감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노동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

전태일 평전을 읽고 나서 노동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전태일의 죽음은 사실 평화시장의 일개 노동자의 죽음이지만 이 사건은 후에 사회의 큰 이슈가 되었고 그의 뜻이 세상에 전해짐에 따라 사회단체, 학교, 종교 단체에서 까지 노동 관련 투쟁을 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역시 투쟁에 대한 동기 유발을 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솔직히 나는 전태일에 관한 영화나 책을 보기 전에는 노동 현장을 직접 경험 해 본 적도 없었을 뿐 아니라 노동 운동이라는 단어자체가 좀 생소했고, 거부감까지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생존을 위한 투쟁이 얼마나 절실했으면, 평화시장의 평범한 피복공장의 재단사인 한 젊은 청년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이나마 그러한 현실들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아직 노동 현장에서의 사회 부조리를 몸으로 체감한 경험은 없지만 ‘전태일 평전’을 통해 노동 현장의 부조리를 간접적으로 조금이지만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전태일은 중학교도 나오지 못한 그야말로 못 배운 사람이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모순의 한 가운데 서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행동으로 그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의 죽음을 도화선으로, 억압 받고 있던 노동자들이 불만을 갖게 하는 요소들은 있는 그대로 사회로 노출되었고, 이러한 불합리한 노동환경은 사회문제로 인식되어, 지금까지도 노동운동은 지속되고 있다.

 

나오며

이 사회에 전태일이라는 신화가 생겨 난 것은 바로 잘못된 사회의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전태일이 살던 시대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구석구석에는 소외된 자들이 살아가고 있다. 소위 기득권층이라는 어마어마한 권력의 세력에서 멀리 떨어져 하루하루 열심히 벌어도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까지도 우리 나라는 부한 사람은 부를 더 축적해가고 빈한 사람은 더 빈해져만 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계속 되고 있다. 이 나라의 기득권층이 변하지 않는 한, 그들이 개혁 하지 않는 한 또 하나의 비극적인 전태일이 생겨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소위 대학생으로 여러 가지를 듣고 배우면서 소양을 키워가고 있다. 아직은 많이 매우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더 나아가 이 나라의 합리적인 제도개선과 의식구조를 바꾸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전태일의 그 용기와 사랑 하는 마음을 닮고 싶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켄슈타인  (0) 2018.05.31
죽음 앞에서 만나는 새로운 삶  (0) 2018.05.29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  (0) 2018.05.23
불씨잡변  (0) 2018.05.21
삼국유사  (0) 2018.05.21

  이 책은 남편이 죽어가는 걸 보고 느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었고, 죽음의 대한 자신의 생각과 종교를 바탕으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책의 내용이 무겁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죽음이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게 마음속으로 꺼림직하였지만, 이책을 읽고 그건 모두 저의 기우였고 독서를 통해 정말 많은 교훈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의 명언같이 한구절 한구절 설명 해놓았는데 읽을수록 이 책과 동화 되는걸 느꼈습니다. 책을 보기 전에는 죽음이란 단어를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주인공의 남편이 백혈병 말기를 선고 받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의 죽음이 임박해지면서 점점 두려워하고 괴로워하지만, 죽음의 대한 두려움과 괴로움을 극복하고 죽음을 이해하고 현실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으니 죽음에 임박해도 희망을 잃지 않고 용기를 줄 수 있다는게 대단하였고 죽음은 죽음 그자체로 극복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보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용기 내고 극복하며 살아가는데 너무 감동이 깊었고 건강하게 태어나서 건강하게 자란 저도 그들에게 용기를 내어주고 희망을 심어주는 성숙한 마음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실수 하나에도 좌절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그들에게 반성하는 계기가 될 거 같고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세상에게 불만과 분노를 삼키고 그러한 감정들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글쓴이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사랑해왔는지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작은 사랑의 문제로 내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자그마한 좌절에도 포기하였지만 이 책을 통해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나의 삶을 돌이켜보며 희망으로 넘치는 새로운 삶에 대한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습니다.


 소홀하기만 했던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일 보는 부모님이지만 사랑한다고 표현도 안하는 사실을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고 지냈습니다. 투정부리고 짜증내고 속상하게만 하는 아들로 바른길로 인도하고 더 좋은거, 더 나은거 해주려고 하는 부모님 마음을 왜 몰랐을까 후회가 됩니다. 소중함을 잊고 살면 안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주위의 다른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용기와 희망을 주는 나의 주위사람들이 있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한번 사는 인생 아름답고 밝게 살아가고 저의 인생을 세상 제일의 보물로 보고 살아가겠습니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켄슈타인  (0) 2018.05.31
전태일 평전  (0) 2018.05.30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  (0) 2018.05.23
불씨잡변  (0) 2018.05.21
삼국유사  (0) 2018.05.21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

2018. 5. 23. 20:41

이 책을 보기 전에 현대 사회와 기독교 수업에서 레나 마리아에 대한 비디오를 감상한적 있었습니다. 그 때 너무 재미있고 감동이 깊어서 이번에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독후감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레나 마리아에게는 하나님과 가족과 생명력과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외모는 두 팔이 없고 한 쪽 다리마저 짧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레나 마리아는 그러한 자신의 핸디캡 때문에 겪었던 재미있었던 일들을 모아 이 책을 썼다고 당당히 말합니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마리아의 이야기 때문에 전세계의 사람들은 감동과 희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이 책에서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단점을 한가지 정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무엇을 하더라도 극복해 내기 힘든 장애를 가졌다고 사람들이 말하고, 겉모습 때문에 측은히 여기기도 하지만 레나 마리아는 자신의 그러한 핸디캡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노래나 음악이 지금의 자신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레나 마리아에게 있어서의 성공,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지금의 레나 마리아를 만들어 놓았던 가장 기본적인 힘이자 마리아의 전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솔직하고 담백한 레나 마리아의 생애를 이야기로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감명 깊게 본 내용으로는 레나 마리아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인사를 하기 위해 정중하게 손을 내미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레나 마리아는 "안녕하세요"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고 왜 그런지 알게 되는 사람은 손을 얼른 집어넣고 미소 짓거나 가볍게 포옹함으로 인사를 대신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어떻게 하면 그 어색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레나마리아는 이런 사람들과 가까워졌을 때,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냐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다행히도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팔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악수할 시간이 없다고 솔직하게 쓴 내용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레나 마리아가 팔이나 손이 없어서 편리한 점이, 절대 반지나 장갑을 잃어 버릴 염려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릴 때 같은 반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아버지가 데리러 와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친구 어머니는 레나 마리아의 장갑을 찾는 일에, 온통 신경을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레나 마리아의 아버지가 안찾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밖이 많이 추워서 장갑을 껴야 된다고 계속 찾다가 친구 어머니가 곧 장갑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적도 있다고 합니다.

 

레나 마리아가 6학년 때에는 학교에서 돌보아주던 보조간호사는 매우 다정했지만, 레나 마리아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반지를 사버려서 자신의 실수를 깨닿고 당황하여 허둥지둥 상점으로 되돌아갔고, 반지는 사슬 목걸이로 바뀌어졌다고 합니다.

 

레나 마리아의 생애로는 1968년 스웨덴의 중남부 하보 마을에서 두 팔이 없고 한 쪽 다리가 짧은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레나 마리아의 부모님은 심각하고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부모님은 서로를 위로하고 며칠이 지난 후 엄마는 레나가 옮겨진 병동에서 모유를 먹을 수 있게끔 펌프를 사용해서 젖을 짰습니다. 이것은 계속 나아가겠다는 의미 였을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는 보호소에 맡길 것을 권유했지만 아버지는 레나 마리아에게 필요한 것은 보호소가 아니라 가족이라고 말하며 레나 마리아를 데려갔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레나 마리아의 부모님은 하나님이 주신 아이로 확신하고 그녀를 정상아이와 똑같이 신앙으로 양육했습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부모에게 있어서 큰 부담도 되고 대단한 도전도 되었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처음부터 레나를 보통 아이들처럼 키우리라 다짐했습니다. 장애인으로서가 아니라, 딸 레나 마리아가 우연히 장애를 안고 있다고 여기며 '이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레나를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 사랑으로 수영과 십자수, 요리와 피아노, 운전, 성가대 지휘에 이르기까지 레나 마리아는 하나 밖에 없는 오른 발로 못하는 게 없었습니다. 3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해서 스웨덴 대표로 세계 장애인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88년 서울 장애인 올림픽 때도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했고 고등학교에서 음악을 시작하여 스톡홀름 음악대학 현대음악과를 졸업하고 대학 졸업 후 본격적인 가스펠 가수로서의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레나 마리아가 쓴 이 책은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일본 등 9개국 언어로 출판되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특히, 기독교 인구가 적은 일본에서 그녀의 책과 콘서트는 복음 전도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지금 프로 가스펠 가수로 전 세계를 다니며 자신을 인도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은혜로운 찬양과 간증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언론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천상의 노래'라고 격찬하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하며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레나 마리아는 날마다 너를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으며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가장 기쁘다고 생각 합니다. 레나 마리아는 신앙의 회복을 위해 성경 학교를 수료한 후 인도로 아웃리치까지 다녀왔습니다.

 

이 책의 레나 마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밝고 명랑한 아이였고 현재 지금도 그런 듯 합니다. 레나 마리아는 단지 다른 사람과 사는 방법이 다를 뿐 장애는 더 이상 그녀를 제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레나 마리아가 들려주는 찬양은 듣는 이로 하여금 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레나 마리아가 이 글을 씀으로써 인생의 주인공으로 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고, 좀 더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사는 동안에 많은 장애인을 접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물론 저도 그랬었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장애인들을 배려하는 시설이나 정상인들의 노력이 적은 것 같습니다. 건물을 봐도 형식적으로는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 있지만 사용방법이 어렵거나 작동을 하지 않아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리고 정상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의식도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인들은 다만 외모적으로 볼 때만 우리와 다를 뿐이지 다른 것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장애인들은 양지가 아닌 음지에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적인 책임이 큰 것 같습니다. 그들을 하나의 똑같은 인간으로 생각해서 같이 공존하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외국에서는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와는 대조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레나 마리아의 모국 스웨덴처럼 다른 나라에서는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이라든지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다 똑같은 하나의 인간으로 여겨지어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때문에 가능했다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대한 신앙과 여러 방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하여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계기를, 일반인들에게는 자신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저도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자기의 장애를 부끄러워 할 것도 아파 할 것도 못되는 것이 생각하며 오히려 자기의 장점으로 여기며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하며 인생을 정말 열심히 사는데, 나는 몸이 불편한곳도 없는데 어떤 일을 할 때 자신감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앞으로는 레나 마리아처럼 용기와 희망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고 장애인들에게는 진정으로 동정이 아니라 용기를 주며 하느님 말씀 잘 들어서 레나 마리아와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감동을 줄수 있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태일 평전  (0) 2018.05.30
죽음 앞에서 만나는 새로운 삶  (0) 2018.05.29
불씨잡변  (0) 2018.05.21
삼국유사  (0) 2018.05.21
나무를 심은 사람  (0) 2018.05.20

불씨잡변

2018. 5. 21. 14:24

 불씨잡변를 처음 접하였던 건 고등학교 때 윤리 공부를 하면서였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 책은 유학의 입장에서 불교의 단점를 비판하고 주관적인 입장에서 배척하였습니다. 이 책은 조선시대 태조 7년에 정도전이 저술하였는데, 정도전이 살아있을때는 발행되지 못하였으며, 정도전이 사형을 당할 때 유고가 발견되어 발행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왕조들의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며 불교가 조선시대에 유해한 종교임을 서술하였습니다.


 딱딱한 한문과 알아듣지 못할 불교적 단어들이 책을 읽는데 조금 힘들게 했지만 다행이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고등학교 때 윤리시간이나 국사시간에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단어와 내용들이 도움이 되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불씨잡변은 제목처럼 불교교리를 아주 맹렬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총 19장이 있는데, 19가지의 측면에서 불교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인간의 세계관이 그릇되었다고. 사람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사회질서를 망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조선이 국가이념을 불교가 아닌 유교를 해야한다는 숭불억불 정책에 대한 당위성을 서술하는데, 유교가 완벽한 사상이고 종교라고 생각하여 서술한 글이라 생각되어, 저는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보는 내내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다른 종교를 억압하고 배척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종교의 자유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불씨잡변을 읽으면서 재미있게 본 것으로 불교의 지옥설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선대의 유학자들은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기 전에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말한 사람들 중에 염라대왕을 보았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면서 지옥이 믿을 것이 하나도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아파서 죽었는데 염라대왕을 만나보고 할 시간이 어디있고, 또 지옥에 염라대왕이 잠깐 자리를 비워서 만나지 못하였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고, 이런걸로 지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중에 지은이와 중의 대화 장면이 나오는데 지은이가 중에게 사람은 지옥이 없어도 선한 것을 좋아하고 스스로가 선한 행동을 잘할 수 있는데 지옥이 있어서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잘못은 부끄러워 하는 것이라 말할 때 참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내세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없지만 지옥이란 것이 없어도 사람들은 서로 양보하고 서로 베풀고 하는 착한 마음씨는 있을 것입니다. 


 불씨잡변을 읽은 덕분에 우리나라의 유학과 불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왜 종교가 중요하고 서로 다투는지 몰랐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종교마다 의견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우리 나라의 사회적 변화와 유학과 불교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 앞에서 만나는 새로운 삶  (0) 2018.05.29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  (0) 2018.05.23
삼국유사  (0) 2018.05.21
나무를 심은 사람  (0) 2018.05.20
베니스의 상인  (0) 2018.05.20

삼국유사

2018. 5. 21. 13:49

 삼국유사를 처음 접하였던 건 고등학교 때 언어 공부를 하면서였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 책은 수많은 왕들과 위인들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와 시 구절이 있었습니다. 



 딱딱한 한문과 알아듣지 못한 단어들이 책을 읽는데 조금 힘들게 했지만 다행이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고등학교 때 국사시간이나 언어시간에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이야기였습니다삼국유사는 또한 우리나라의 신화와 원형적 옛 전설의 모습을 알게하는 유일한 책이라고 합니다. 삼국유사의 문학적 가치는 제 생각보다 대단하였으며,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역사속에 들어가본것만 같았고, 유적지를 가본것만 같았습니다. 책의 내용은 크게 어렵지 않았고, 다양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동화책 읽듯이 재미가 있었고,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역사지식를 배울수 있었습니다.



 일단 제1권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시조를 알려주었습니다. 그 중 발해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었는데 몇 일전 제가 군장학생 면접을 볼 때 동북공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습니다. 삼국유사를 보고 중국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 왜곡에 대한 생각이 들었는데, 삼국유사에서는 발해가 고구려의 후예이며 백제의 말년에 발해말갈과 신라가 백제의 땅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단군신화와 고구려의 주몽탄생신화가 있었는데, 중국이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고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를 자기네 역사라 주장하는 걸 삼국유사를 보고 우리역사는 우리 힘으로 꼭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처용랑에 대한 이야기를 감명 깊게 읽었는데, 아무리 처용이 용의 아들이며 왕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지만 자기 아내와 역병 귀신이 잠자리에 드는걸 보고 노래하고 춤을 출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인격이 좋고 관대한 사람도 이런 상황에서는 화가 나고 억울해야 할 것 같은데, 처용은 무슨 생각으로 노래하고 춤을 추었으며 역병 귀신을 용서해주었을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처용의 이런 행동이 관용이라 보다는 자포자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도망가지 않고 당당하게 모습을 나타내어 용서를 구하는 역병 귀신에게 화도 나고 슬퍼하는 아내를 위해서 복수라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처용의 모습이 바보 같고 이해 가지 않지만 역병 귀신을 물리치고 많은 사람들이 처용의 모습만 문에 붙여놓아도 나쁜 귀신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훌륭한 업적을 남기신거 같습니다.

 

 삼국유사를 읽은 덕분에 우리나라의 역사와 신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고 맞선 위대한 분들에게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왜 민족의식이 중요한지 몰랐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역사를 알아야 애국심도 더욱 커지겠구나 알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 앞에서 만나는 새로운 삶  (0) 2018.05.29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  (0) 2018.05.23
불씨잡변  (0) 2018.05.21
나무를 심은 사람  (0) 2018.05.20
베니스의 상인  (0) 2018.05.20

나무를 심은 사람

2018. 5. 20. 12:00

 “나무를 심은 사람은 내용은 짧았지만 많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 책을 읽음으로서 식물은 생명을 가진 것으로 아끼고 인간과 공생하는 존재로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걸 알았고, 나무를 생각하게 되었고, 나무를 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줄거리는 간단했는데, 책속의 주인공은 프로방스 지방에 고원을 산책하다가 황무지에서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노인을 만납니다. 모두가 떠나 버린 황무지에서 그는 도토리 하나하나를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로 골라놓고 하루에 백 개씩 그곳에 묵묵하고 쉼 없이 심었습니다. 부피에는 나무가 부족하여 땅이 죽어가고 주민들이 포악해진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땅은 아니지만 산 곳곳에 너도밤나무뿐 아니라 떡갈나무 씨를 뿌리고 가꾸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부피에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이도 많고 아무도 하지 않고 신경써주지 않는 일을 왜 그렇게 노력하며 하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부피에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부피에가 희망을 심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년이 흘러 전쟁 후 주인공은 부피에가 살던 곳을 다시 찾아와 그동안 나무들이 10년생의 우람한 나무로 성장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인공은 울창한 숲을 바라보며 사람의 노력으로 삶의 터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조금씩 자연이 되살아나기 시작하여 메말랐던 마을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주민들이 하나 둘씩 돌아옵니다. 그리고 부피에는 89세의 나이로 바농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죽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내 삶을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선 엘제아르 부피에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젊은 나이에 가족을 잃으면서 삶의 회의를 느꼈지만 자신이 해야 할 그 의미 있는 삶을 찾아나서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산거 같습니다


 저도 주인공의 생각처럼 홀로 황무지를 희망의 땅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이 생각할 때면 부피에가 가진 위대한 영혼 속의 끈질김과 고결한 인격 속의 열정이 생각나고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부피에는 부자도 아닌 가난한 농부였지만 다른 사람의 존경받는 사람들 어느 누구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이 살지 못할 곳 이라고 여긴 황무지, 그리고 희망을 잃고 떠나는 사람들. 그곳은 엘제아르 부피에는 고른 나무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처음에는 부질없는 일로 생각했으나, 그것은 엘제아르 부피에의 희망이자 삶 그 자체였습니다. 부피에가 일군 씨앗처럼 사람들과 자연이 공존하며 희망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피에를 보면서 정말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올바른 행동이 나중에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 도 알게 해주었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주인공의 친구인 산림관리인을 생각해보았는데, 책에서는 이름도 성도 나오지 않고 별로 중요한 인물은 아니지만 정말 정직하고 바른 도덕의식과 윤리의식을 지닌 사람인거 같습니다. 자신이 높은 자리에 있지만 겸손 할 줄 알며 나무꾼들이 희망의 땅의 나무를 숯으로 이용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뇌물도 소용없을 만한 믿음직스러운 관리인 세 명을 배치하였습니다. 이 산림관리인은 전문인으로써 사회적 책임감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저에게 많은 가르침이 되었으며. 환경윤리 내용이긴 하지만 공학윤리를 배우는 저에게 좀 더 윤리적인 고민, 사회적인 고민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이 조그만 책이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는데 나무를 심은 사람의 내용을 생각하면 부피에의 끈질긴 노력으로 새로운 삼림이 탄생하고 희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이기심과 무절제한 욕망, 앞날을 조금도 내다보지 못하는 무지, 나무를 비롯한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파괴,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살육하는 두 차례의 전쟁이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반대과정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글은 물질주의에 맞서 인간의 정신적인 가치와 행복을 중시하는 정신주의를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근대 문명을 이끌어온 기계적 세계관, 인간중심주의, 발전론 등이 올바른가에 대해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계를 인간의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보고,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켜 2원론적 세계로 바라보는 사람들. 물질주의를 숭배하며 영원한 성장을 믿고, 과학과 기술을 숭배하고 자연을 무시하는 기계적 세계관을 가지 사람들이 과연 옳은지, 인간이 최고라는 인간중심주의가 옳은지, 자연을 파괴해서라도 무조건 발전만 하자는 발전론이 옳은지 생각해 보았지만 어느 하나도 바르지 않았습니다.


 인간과 땅 사이의 조화와 더불어 인간과 동물, 그리고 식물사이의 공존관계도 소중하게 다루고, 자연 없는 인간은 상상 할 수 없듯이 이제는 지구촌의 환경위기를 깨닫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며 환경문제들의 근원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은 누구라도 감동과 자기반성을 하게 만들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문명의 위기 속에서, 썩어가는 물질문명의 타락 속에서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켜주고 새롭게 눈뜨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 앞에서 만나는 새로운 삶  (0) 2018.05.29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  (0) 2018.05.23
불씨잡변  (0) 2018.05.21
삼국유사  (0) 2018.05.21
베니스의 상인  (0) 2018.05.20

베니스의 상인

2018. 5. 20. 10:32


중학교 이후 독후감을 써 본적이 몇 번 없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베니스의 상인을 이미 한번 봐서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어른이 되어 베니스의 상인을 다시 보니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베니스의 상인 앤토니오는 자신의 전 재산을 실은 4대의 배를 출항시키지만 며칠 후 친구 버사니오가 찾아와 한 여자에게 청혼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돈이 없었던 앤토니오는 유대인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4천 더컷을 빌리기로 하고 기간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앤토니오의 가슴살 일 파운드를 주기로 하였다.


샤일록은 유태인 고리대금업자라는 이유 때문에 그동안 앤토니오로부터 갖은 박해와 모욕을 받아온 사람이었다. 샤일록은 마음속으로는 앤토니오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도, 기회를 잡기 위해 웃으면서 돈을 빌려주게 된거 같다.

버사니오가 청혼할 사람은 포셔라는 여자였고 버사니오는 포셔와 결혼하였다.


하지만 둘이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을 때 앤토니오의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이 퍼지고, 앤토니오와 샤일록은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청년으로 위장한 포셔가 판사로 위장해 앤토니오를 변호하고, 포셔는 샤일록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리스도로 개종할 것을 명하고 자신의 남편이 된 버사니오를 사랑의 징표인 반지로 시험했다. 포샤는 부부간의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남편에게 깨우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바로 법정에서의 판사였음을 밝혔다


베니스의 상인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우정과 사랑을 중시한 작품이지만 그리스도 인이 가지고 있던 반유대 감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인거 같다. 그래서 세계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게 도와준 고마운 작품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작가의 생각과 그 시대의 상황이 반영되었는것을 알아내니 보람있고 재미있었다.


학창시절에 정말 친한 친구가 있었지만 별일 아닌 일로 한번 심하게 다툰 이후로 서먹해진 친구가 있는데 이 책을 읽고 우정이 무엇인지,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고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 것 인지 알게 되었다. 친한 사이일수록 더욱더 서로를 생각하고 무슨 일이든 서로 의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어디서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지금 친구들과 서로를 생각해주고 우정을 지켜나간다면 언제든지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고 다시 예전친구와도 사이 좋게 지낼 수 있을꺼 같다. 앞으로도 시간적 여유를 내어 마음의 양식인 독서 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아직 베니스의 상인을 읽지 않았다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세익스피어의 작품중에 대중적으로 성공한 책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재미도 있고, 교육적으로도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 앞에서 만나는 새로운 삶  (0) 2018.05.29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  (0) 2018.05.23
불씨잡변  (0) 2018.05.21
삼국유사  (0) 2018.05.21
나무를 심은 사람  (0) 2018.05.20

+ Recent posts